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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먹고

[경리단/이태원] 쁘띠발롱 (Petit Ballon)

평소 친구들과 만날 때면 주로 제가 추천하는 맛집으로 가게 됩니다.

블로그를 관리해보자 결심하기 전에는 맛집 평과 음식 사진들을 주로 페북에 올렸고, 그러다보니 생판 가본 적 없는 동네 맛집추천까지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곤 하거든요. 보면 저랑 만날 때면 친구들이 그냥 "얘가 알아서 데려가주겠지" 하고 따로 안 찾아보는 것 같아요..ㅜ_ㅜ

하지만 친구 S랑 만나면 항상 이 친구가 찾아온 집을 따라서 갑니다. S가 추천하는 맛집들은 일관되게 '아는 사람만 아는' 분위기를 풍기면서, 사장님의 개성과 신념이 느껴지는 곳들이기에 저도 따로 가게 검색하지도 않고 믿고 따라갑니다. 약간 비싸지만 가게마다 사장님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아직 장진우 골목이 뜨기 전, 처음 장진우 식당을 소개시켜줬던 친구도 이 친구에요!




그리하여 S를 따라 찾아간 경리단길 초입의 쁘띠발롱.

한창 경리단길 자주 들락날락거리던 시절이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튀는 가게를 몰랐던 것이지..! 하며 놀라 돌아와서 블로그를 검색해보니 15년도 6월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합니다. 깜짝 놀랐네요.. 그래도 작년 말에 몇 번 갔는데 왜 못 보고 지나쳤던 것일까요.


금빛과 검은색으로 장식된 꽤 튀는 외관임에도 불구하고, 신경을 쓰지 않으니 이상하게 지나쳐가게 됩니다.

쇼윈도우 안에 장식된 열기구 모양의 소품들 덕분에 Ballon이란 단어의 두 가지 뜻, 풍선와인잔 모두를 살리고 있네요.


프렌치 퀴진 전문점인데, 내부 인테리어는 1920년대 초 대공황 직전의 미국 Jazz Age를 연상시킵니다.
부를 과시하듯 화려한 황금빛, 직선과 기하학을 강조한 아르데코 양식의 벽과 조명, 검게 광나는 대리석 테이블.

1층 홀에는 4인석 3테이블, 6인석 1테이블이 구비되어있습니다. 가게가 작은데 워크인은 어쩌지? 했는데 물어보니 사전예약제라 합니다.

2층의 8인 규모 단독룸은 교외의 풍족한 집안 다이닝룸 같은 느낌으로 1층 홀과 상반되는 분위기였습니다. 단독룸 내부를 급하게 찍느라 사진으로 잘 표현이 안되어 못 올리는게 아쉽네요.


처음엔 차분한 단독룸이 더 좋다 생각했으나, 머무르다보니 1층 홀석의 화려하고 소비지향적인 분위기에 괜히 들뜨네요.


차도와 바로 접해있어 창 밖 풍경은 조금 아쉽습니다


추천해주신 디너코스.

스페셜 코스라 그런지 300g 정도의 두꺼운 무광 종이에 무광 금박으로 글씨를 인쇄했네요. 구겨질세라 사진만 찍고 가만히 내려놓았습니다.




디너메뉴는 A, B, C 코스 (각 44,000 / 55,000 / 66,000)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파스타와 메인을 제외한 기본 구성은 동일하니, 파스타와 메인과 가격을 보고 선택하시면 되세요.

옆에 있는 단품 Bar Food는 20:30 이후부터 주문 가능하며, 코스 이용 없이 단품만 드실 경우엔 와인을 주문해야 하는 점 유의해주세요.

저희는 A 코스와 B 코스를 반씩 섞어서 주문하였습니다.


아뮤즈부쉬.

순서대로 - 멍때리다가 설명을 놓쳐 요거트인줄 알았으나, 한 입 먹고 의아해진 가스파쵸.
새우 머리가 가볍고 바삭하게 튀겨져있던 홀머스터드를 얹은 단새우,
그리고 Poached Pear가 빠진 푸아그라.

가츠파쵸는 잘 섞어서 먹으면 되고, 새우 머리는 비스킷마냥 바삭바삭 고소하고 맛있었다.

설명 해주시던 서버 분이 푸아그라에 배가 안 곁들여져 있는 것을 보고는 급히 주방에 가서 가져와 주셨다. 
푸아그라는 아직도 맛이 잘 인지가 안되어 먹을 때마다 의아한데, 러스크와 푸아그라의 조합에 달달한 배를 얹으니 (의외로) 맛있다는 정도는 느꼈다!


레드와 스파클링 중에서 고민하다가, "특별한 날은 스파클링!" 이란 생각으로 주문한 Langlois Brut Cremant de Loire, 2009.

저렴한 칠레산 N.V.를 고르고자 했는데, 소믈리에 분이 가격차이는 적지만 프랑스산 09년도 빈티지란 점에서 Langlois를 추천한다 하여 넙죽 따랐다. 경험상 어설프게 아는 체 하느니 전문가 권유를 따르는게 낫다.

기포가 작고 섬세하여 요란스럽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달지 않아 디저트와 곁들여서 먹어도 맛있었을텐데, 디저트 나오기 한참 전에 비워서 아쉽다.


케일 샐러드. 위에는 보리가 얹혀져있고 샐러드 밑에 깔린 요거트와 다 함께 버무려서 먹으면 된다.

이렇게 가느다랗게 썰었는데 샐러드라고..? 싶었는데, 요거트와 보리와 버무리니 약간 반은 샐러드, 반은 요거트 같은 느낌이었다. 보리 덕택인지 약간 배도 차는 느낌.


백년초 폼이 올라간 스프. 폼과 함께 먹으면 새콤, 없이 먹으면 부드러운 맛.
기억에 확 각인되는 맛은 아니었습니다.


이 빵 먹고 다들 맛있다고 난리법석을 피웠습니다. 살짝 짭짜름하고 속이 쫀쫀하니 살아있어요. 친구 한 명은 흥분하고 집었다가 뜨거워서 깜짝.

뒤에 살짝 보이는 석류버터를 함께 발라 먹어도 좋고, 개인적으로는 일반 가염버터가 좀 더 땡겼습니다..!


세트 B의 파스타, 우럭과 토마토 파스타. 

통으로 시칠리아 스윗 올리브가 들어가 있었어요. 요즘 집에 12,000 원짜리 큰 통 한 통씩 사놓고 먹고 있는데.
대중적으로는 체리뇰라 올리브가 더 인기있다지만, 시칠리아 올리브가 더 기름지고 과육이 부드러워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세트 A 중합 샤프론 크림 스파게티.
소스에 잠겨있는 중합이 언뜻 보면 단호박 같네요.

맛은 어째 오묘. 첫 입을 먹었을 때 단맛과 짭짜름한 맛이 뒤섞인 소스까지는 괜찮았는데, 소스 끝맛에 강한 짠맛이 따로 놀았습니다. 우럭 스파게티도 짠맛이 강한 편이었는데, 중합 스파게티에서는 조개가 해수를 잔뜩 머금고 있었던 것인지 따로 소금을 치신건지 싶게 짠맛이 찌르듯 들어왔습니다. 평소 다른 사람들이 짜다며 불만을 표해도 잘 먹는 편이어서 더 의아했네요. 실수로 소금을 훅 치신건가..?

우럭 파스타는 맛있게 비웠는데, 중합 파스타는 결국 꽤 남겼습니다.


세트 A에 나오는 수비드 제주도 흑돼지 삼겹살. 아래에는 파인애플과 비트가 깔려있습니다.
함께 나온 양배추 튀각(?)이 의외로 고소하고 바삭하니 맛있었어요. 어째 음식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허를 찔리는 느낌입니다.

크기는 조금 작은 편이었으나, 앞서 나온 메뉴들 덕분에 배가 어느 정도 차고 있었기에 큰 불만은 없었습니다.
다만 고기가 수비드했다는 느낌이 확 올 정도로 육질이 야들야들하지 않은 점은 아쉬웠습니다.


단검마냥 꽂혀있는 오징어 먹물 누가틴과
오리다리 콩피!

좀 정성들여 해체했어야 하는데 이 날 따라 지쳐있어서, 칼등과 포크로 거의 북북 찢다시피 해체했네요.
먹기는 편한데 보기가 안 좋았..

고기가 부들부들하면서 적당히 탱탱했습니다. 껍질은 조금 더 바삭한 편을 좋아하지만 이 정도는 개취니까 패스. 만족스러운 메뉴였어요.


후식으로 홍차. 디자인 분위기가 낯이 익어 소서 바닥을 확인하니 웨지우드 잔이었습니다.

2층 단독룸에도 보니 진열장에 웨지우드 티세트가 장식되어 있던데.. 주인분이 취향이 매우 굳건하심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어요. 세세한 부분까지 믾이 공을 들이셨네요.


디저트는 티라미슈와 얼그레이 푸딩 중에서 선택 가능.

티라미슈 시트가 진하고 씁쓸한 에스프레소를 묵직하니 머금고 있습니다. 시트지의 진한 커피맛이 인상깊어 크림이 어땠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맛이 덜 단편이어서 마음에 든 것까지는 기억납니다.


여심저격 얼그레이 푸딩.
맨 위는 새하양고 아래로 내려가면 보다 진한 얼그레이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직선적이고 모던한 분위기의 다른 요소들과 달리 얘만 여성스러운 느낌의 디저트 보울에 담겨있습니다. 얼그레이 푸딩 자체가 굉장히 사뿐사뿐하고 소녀같은 맛이어서, 딱 푸딩만 변주를 주는 느낌으로 신경을 쓴 듯 합니다. 이 날 그릇 뽐뿌 엄청 당했네요..






화려한 인테리어와 고급스러운 분위기,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렌치 전문점 치고 착한 가격이 매력적인 쁘띠발롱이었습니다.

음식은 이 날 A세트 중합 크림파스타 맛이 조금 충격적이어서 자신있게 추천해드리기엔 조금 머뭇거려지네요. 중합 파스타만 평타 쳤더라면 대충 "완벽한 디저트와 맛있었던 메인 코스" 정도로 얘기했을텐데.. B세트에 나온 우럭 토마토 오일 파스타도 확실히 짰지만 감당 가능한 정도였어요. 다른 음식들은 딱히 안 그랬는테 파스타만 조금 짰네요.

파스타에서 아쉬움이 다소 남았지만, 가게 분위기가 워낙 매력적이고 서비스가 깔끔해서 재방문 의사는 있습니다. 

프렌치 코스 요리의 특성상 서버분들이 계속 그릇 치우고, 식기 치우고, 접시 가져다 놓고 해야 하다보니 서비스가 꽤 중요합니다. 서빙하시는 분이 서두르면 대화가 뚝뚝 끊길 수 있거든요. 하지만 쁘띠발롱에서는 치우는 줄도 모르게 매끄럽게 다 사용한 접시들을 빼가십니다. 음식에 대해 설명도 깔끔하게 해주시고, 서빙 교육을 철저하게 받으신 것 같던데 이 덕분인지 업무에 대해 프라이드도 살며시 느껴졌습니다. 자기 일에 대해 프라이드가 없으면 그렇게 정성들여서 챙겨주지 못할 것 같네요.

안락한 분위기에서 친구들과 이야기 하다보니 훌쩍 3시간 반이 지나버렸습니다. 조금 더 있고 싶었지만 마지막으로 맥주 한 잔 땡기자 하며 급하게 일어나버렸네요. 작지만 세련된 장소에서 마음 편히 이야기 나누고 마치 SATC 촬영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사장님의 소신과 신념이 느껴지는 프렌치 레스토랑 쁘띠발롱. 다음엔 2차로 가서 치즈 플래터와 와인, 그리고 디저트를 즐기고 싶네요!







쁘띠발롱 (Petit Ballon)

주소  용산구 녹사평대로 228-1
번호  02-790-2277 (예약제, 예약 필수)
시간  런치 코스 12:00~17:00 (L.O. 15:00)
디너 코스 18:00~00:30 (L.O. 21:00)
바 (단품 식사 및 안주 - 와인 주문 필수) 20:30~00:30 (L.O 23:00)
기타사항  메인 홀 수용인원 18인 (4인 단체 4팀가량) / 2층 단독 룸 수용인원 8인, 단독 대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