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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쉬고

[16 쿠로가와] 료칸 후지모토 旅館藤もと - (2) 온천


할머니, 이모, 엄마와 함께하는 효도온천여행 1일차 숙소,

구마모토 쿠로가와 마을 인근 료칸 후지모토.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중요시했던 부분은 료칸 선정이었습니다.

할머니가 메인인 효도여행이었다보니 이동 및 동선을 가능한 최소화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료칸에 들어가는 순간 바깥으로 나갈 필요 없이 안에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죠.


온천료칸의 컨텐츠라면 역시 온천시설이다보니, 이를 중점으로 두고 숙소를 선정했습니다.

쿠로가와 온천마을 내의 숙소들은 온센메구리를 통해 다른 숙소의 온천을 즐길 수 있는게 매력이지만, 그러기 위해선 부지 밖으로 벗어나 시내를 걸어야 했기 때문에 료칸 자체적으로 보유한 탕이 좋은 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찾게 된, 제 의도에 딱 부합하는 료칸 후지모토.







프런트에서 객실로 이동하면 객실로 이어지는 복도 직전에 나타나는 탕 입구.


노천온천도 가족탕도 다 이 쪽으로 내려가시면 됩니다.

가족탕의 경우, 이용 전에 프런트에서 열쇠를 챙겨오세요.




내탕 쪽 샤워시설에서 몸을 씻은 후 바로 노천온천으로 향했습니다.


혹여 다른 이용객이 있을까 싶어 카메라 없이 폰만 챙겨왔는데, 저희가 들어올 때 이미 다 씻고 나오던 손님 빼고는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네요. 덕분에 3모녀와 함께 노천탕 전체를 독점하여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보시면 왼편에 있는 탕이 제일 위엣탕이고, 전면에 크게 있는 탕이 두번째인데요. 첫 탕에서 흐른 물이 내려와 둘째 탕을 채우기도 하고, 별도로 둘째 탕에 물이 공급되기도 합니다.


본래는 맨 위엣탕이 더 뜨끈하다 하는데, 저희가 왔을 때에는 아랫탕에만 물이 공급되고 있어 오히려 아랫탕이 더 뜨끈했네요.




4명이 들어가도 서로 몸 부딫힐 일 없이 느긋하게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넓이입니다.

위엣탕은 2명이 적당하고, 3명이 들어가면 조금 낑길 듯 하네요.




잠시 몸을 담근 후 바로 계곡변 탕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멀리서 찍어 조금 작아보이지만, 여기도 4-5명 여유로이 놀 수 있을만한 넓이입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보이나요!




계곡변이라 온도가 위엣탕들보다는 살짝 낮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마침 물을 공급하는 시점이어서 그런지 여기도 따뜻하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후지모토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일본 내에서도 보기 드물다는 계곡변 온천 때문이었는데요.

계곡변에 노천탕이 위치한 료칸은 쿠로가와 내에도 호잔테이, 야마미즈키 등 종종 있지만

이렇게 계곡 바로 옆, 같은 높이에 노천탕이 위치한 경우는 찾기 힘들다 합니다.


이 노천탕 덕분에 일본 내에서는 "일본의 숨겨진 온천명소" 같은 제목으로 잡지, 언론 등에 종종 소개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워낙 산중에 숨겨진 덕분인지 객실 수가 적은 덕분인지, 한적하고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네요.




계곡 바로 옆에 있다보니, 탕에 앉아있다보면 시원하게 물 흐르는 소리가 귓속을 가득 채웁니다. 물이 졸졸 흐르는게 아닌 쏴아아- 우렁차게 흐르는지라 개방감이 더해지는 느낌입니다. 어릴 때 가족과 산에 놀러가 계곡변에서 식사는 자주 해보았어도, 이렇게 계곡변에서 노천온천을 즐기는 것과는 비할 수가 없네요.


마을에서부터 조금씩 내리던 비가 여전히 엷게 이어지고 있어, 얼굴에는 이슬비를 맞으며 몸은 뜨거운 온천수에 맡긴 채 두 눈을 감고 사방을 계곡소리로 가득 채워 신선놀음을 즐깁니다. 잠시 후에는 위엣탕에서 온천욕을 즐기던 3모녀와 함께 목욕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네요.


아무리 가족이어도 엄마와도 단 한 번 공중목욕탕 가보지 않은 사이인지라, 온천에 가기 전까지는 걱정을 했는데

이토록 멋진 온천을 앞에 두고 있자니 샤워실에서 씻을 때까지만 해도 남아있던 부끄러움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1시간 가량 이어진 온천욕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객실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계곡변 탕은 계단으로 이어져있는데, 다행히 계단쪽은 이끼가 피지 않도록 잘 관리한 덕분인지 미끄럽지 않았네요.

하지만 계단 옆, 사람 발길이 닿지 않도록 놓인 돌들엔 이끼가 미끌미끌하니 사진 찍기 위해 무리하게 발을 딛지 않도록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돌계단을 내려가거나 올라갈 때도 우선 주의하시고요!




식사를 마친 직후, 잠시 배 두들기며 노곤해하고 있다가 서둘러 다시 여성노천탕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식사 후 30분 내로 온천욕을 즐기는 것은 소화에 방해가 된다 하여 사람들이 온천욕을 하지 않는 시점인데요.

그런만큼 노천탕에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다시 찾았습니다.




저녁 7시 반, 이미 어둠이 내린 다음.


낮의 햇살 아래에서는 뿌연 하늘빛에 녹색이 가미된 예쁜 색이었는데, 햇살 아래에서 보이던 색이 밤에는 보이지 않아 아쉬울 따름이네요.




살짝 온도를 재보니 그새 윗탕을 다시 데운 것인지 윗탕은 많이 뜨겁게 느껴졌습니다.




잘 관리된 채로 세월을 축적해온 느낌이 물씬.




밤의 계곡. 밤에도 경관을 즐기고 무섭지 않도록 조명을 쨍하게 비춰주고 있습니다.

혼자 저녁에 오면 무서울 것 같아 걱정했는데, 덕분에 마음이 놓이네요.




수면과 눈높이를 맞춰서 한 장. 여기까지 찍고 나니 소화고 뭐고 어서 홀로 노천탕을 만끽할 수 있는 이 시간을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다시 객실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나오면서 살짝 찍은 탈의실 모습.

사진 타임스탬프 상으로는 19:39이라 찍히는데, 시계의 분침은 25분을 가리키고 있네요.


탈의 바구니와 헤어드라이어, 세면대, 그리고 손 세정제 등이 구비되어있습니다.

샤워공간에는 바디워시와 샴푸 컨디셔너가 준비되어있고요.

후지모토의 경우 세안제와 로션은 제공되지 않는 점 유의해주세요.


떠억하니 붙어있는 사진촬영 금지 스티커 눈치를 잔뜩 보며 객실에 카메라를 가져다둔 후, 다시 내려와 온천욕을 즐깁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탕 내에 일행 외 다른 고객이 있을 때는 카메라도 폰카도 촬영하지 않도록 꼭꼭 주의해주세요! 저라도 모르는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들어온다면, 아무리 이 쪽을 향하지 않는다 해도 마음이 불편할테니..^_^;




온천욕을 마친 후 수분을 보충할 수 있도록 구비된 미니 정수기.

안에 큼지막하게 얼려진 지하수가 담겨있다는데, 시원하기도 시원하고 물맛도 너무 좋아 저 작은 종이컵을 3-4번은 채워 계속 마셨네요.




저녁 온천욕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잠시 이불 속에서 눈을 붙였다가, 이대로 잘 수 없다는 생각에 3모녀가 함께 다시 온천욕을 하러 갑니다.


대욕장 앞에 다다르면 왼편에 4개의 가족탕으로 향하는 길이 있습니다.

마루노유와 마스노유는 2인 정도 들어갈 수 있는 넓이의 히노끼/석조 내탕이고, 

소라노유는 히노키 노천탕, 텐노유는 석조 노천탕이라 힙니다.


소라노유도 궁금했는데, 내부에 불이 꺼져있어서 겁 많은 저는 차마 들어가질 못했네요.

텐노유는 다른 고객 분들이 이용중인지라 저희 일행 4인은 마루노유와 마스노유로 나누어져 들어갔습니다.




들어가면 거울과 옷바구니 2개로 구성된 탈의공간이 있고,




탕 한 켠에 샤워공간과, 2인이 들어가기 적합한 사이즈의 석조탕이 있습니다.

마루(ㅇ)노유는 둥근 원모양, 사진 속의 마스(ㅁ)노유는 네모난 모양이니 알기 쉽네요.




내탕은 아무래도 노천탕보다는 온도가 높네요.

창가에서 바깥의 전경과 계곡소리를 흠뻑 받아들이며 온천욕을 즐기고 갑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대욕장의 경우 여자탕과 남자탕이 매일 서로 바뀌는지라, 다른 탕을 경험하고 싶어 눈 뜨자마자 달려가려 합니다..만

해가 서서히 짧아지는지라, 탕이 오픈하는 6시에 바로 일어나니 밖이 아직 어둑어둑하네요.

잠시 기다린 후 6:40분 즈음에 대욕장으로 달려갑니다.




새로이 받은 물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내탕.

하루의 첫 시작, 아직 아무도 맞이하지 않은 대욕탕에 들어섰더니 내탕 물이 확실히 전날보다 뜨겁더군요.




전일 여탕에서는 찍지 못했던 샤워공간 쪽 모습과 노천탕으로 나가는 문.

온천욕을 마친 후 찍은 사진이라 바구니와 의자가 나와있는데, 처음 들어갔을 때에는 가지런히 벽 쪽에 늘어서서 사용되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날 대욕장과 비슷한 구조의 노천탕.

다만 어제 탕은 돌탕이었다면 이 날은 노송나무 탕이었다는 점이 조금 다르네요.




어제 탕에 비해 조금 더 잘 다듬어진 느낌의 계곡변 노천탕.

사이즈는 더 작지만 수심은 살짝 더 깊은 느낌입니다. 머리 위에 드리워진 단풍나무가 이슬비를 막아주어 아쉽더군요.


아침에 바로 도착했을 때는 아직 어둑어둑한지라 등이 켜져있었는데, 이 사진은 아침식사 직전에 탕 모습을 찍으러 내려왔을 때 촬영한거라 등이 꺼져있습니다.




이 쪽 노천탕은 계곡과 높이차가 있어, 어제와 달리 노천탕에서 손을 뻗어도 계곡에 닿지는 못하네요.

전반적으로 보다 잘 다듬어진 느낌이지만, 어제 탕과 어째 계속 비교하게됩니다.




요건 입욕하면서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 아직 등불이 들어와있네요.

계곡변 노천탕 1에서 바라본 계곡변 노천탕 2입니다.

탕 사이즈가 살짝 더 작은 대신 갯수를 늘렸네요.




한 명이 들어가기에 딱 괜찮은 돌탕입니다. 그늘 탓인지 물 색이 보다 짙어 무언가 다르려나 기대를 하고 들어갔는데, 수온이 다르더군요. 뜨겁지 않고 미적지근한 온도에 살짝 실망한 채로 잠시 앉아있다가 계곡탕 1로 돌아갔습니다.


양 옆의 단풍나무가 제법 멋있게 계곡 쪽으로 드리워져있어 운치는 좋았지만, 수온이 낮아 영 아쉬웠네요.




계곡탕 2에서 바라본 계곡탕 1의 모습. 살펴보니 계곡탕 1로 뜨거운 물이 공급되면 그 물이 2로 넘어오게 얕은 수로가 파여있었습니다. 2로 직접 온천수가 공급되지 않는건지 살펴보았어야 하는데, 이 부분은 놓쳤네요.




수온은 아쉬웠지만 제법 아기자기했던 1인용 계곡탕. 위쪽 노천탕으로부터 숨어있는 느낌이기도 해서, 물만 뜨끈했더라면 다른 손님들이 위에 있을 때 홀로 이 쪽에서 온천욕을 즐기기 좋았을 것 같습니다.




2박 3일의 여정중 마지막 날 아침을 제하곤 꾸준히 내리던 얇은 빗줄기.

평상시 여행할 때 비가 오면 안타까워하는데, 쿠로가와 온천마을은 비가 내리면 운치가 배가되는 여행지인지라 되려 반가웠습니다. 장대비 속에서 노천온천을 즐길 수 있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비가 와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라면, 쿠로가와 산골마을의 맑은 밤하늘에 쏟아질 듯 빼곡한 별들을 보지 못했다는 점 정도 같습니다. 특히 후지모토는 쿠로가와 마을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있어 별들이 더욱 또렷할텐데, 엷게 꾸준히 이어진 가랑비 덕분에 별을 보지 못한건 아쉽네요. 다음 방문을 기약할 이유가 하나 늘었습니다.




차가운 빗줄기가 온천수 증기 사이로 가느다란 길을 내며 소리없이 내려옵니다.

고생한 카메라에겐 미안하지만, 오래된 이야기와 같은 운치가 느껴져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하겠더군요.








이렇게 2박 3일간의 일본 효도여행 포스팅을 마칩니다.


본래 4월 말에 갈 예정이다가 큐슈 전역에 영향을 미친 구마모토 지진으로 인해 모든 계획이 취소되면서, 타케후에 재개관과 가을 단풍에 맞춰 10월로 미루어진 여행이었는데요. 처음에는 지진으로 취소되며 심히 당황스러웠지만, 덕분에 정보를 더 찾아모아 큰 탈 없이 매끄러운 자율여행이 되었으며, 덕분에 후지모토 료칸도 찾아 만족했습니다.




여행 중 묵었던 두 숙소를 비교하자면


둘째날에 묵었던 타케후에는 마치 제가 신..? 이 되어 극진한 대접을 받는 것처럼 지극정성인 서비스와, 대나무 숲에 포옥 안겨 세상과 동떨어진듯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습니다. 타케후에에서 스스로 소개문구에 "피안의 세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고, 저희 할머니도 "천당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하는 감상을 들려주셨네요.


이에 반에 후지모토는 일본의 문화를 체감하고 올 수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외국어 대응이 잘 안 되는 스태프 덕분에 일본어로 소통하며 뿌듯하기도 했고, 다른 손님들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던 타케후에와 달리 식사 시간에 식당에서 그리고 대욕탕에서 손님들과 마주치며 일본 현지인들의 행동양식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묵었을 때 저희 외에는 모든 손님이 일본 분들이어서 더욱 그랬네요.




요약하자면 타케후에는 위치한 나라와는 상관없이 극락을 체험하게 해주었다면, 후지모토는 지극히 일본적인 온천료칸을 체험하게 해주었달까요. 이에 더해 묘하게 산 속의 사찰 같은 고요하고 차분한 기운이 감돌아, 이번에 급작스레 이틀 휴가가 생기며 다시 쿠로가와를 방문할 계획을 세울 때 후지모토 객실 상황부터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타케후에는 1인 요금이 최고 6만엔..^_^ 인데다 후지모토는 1인 고객은 받지 않아서 이번에 방문하지 않은 곳들로 가게 되었지만요.




사람마다 각자에게 맞는 여행 타입은 다를겁니다. 이번 쿠로가와 여행 전까지 저는 제가 패키지보다는 자율여행을, 단체 보다는 홀로 여행을, 쇼핑보다는 산책을 관광명소보다는 동네의 오래된 가게를,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 속 휴양보다는 메트로폴리스 도시여행을 좋아한다고 스스로 정의내리고 있었는데, 이번 여행 덕분에 도시여행보다 상위에 온천여행을 두게 되었습니다. 여지껏 다녀온 해외의 어느 도시보다도 여행 후유증이 길고, 다시 가고 싶다는 간절함을 남긴 여행이었어요.


일상 생활에 영향이 올 정도로 후유증이 커서, 이 역향수병을 해소하기 위해 부랴부랴 여행 일정을 짰을 정도니까요 :)



모쪼록, 외진 블로그에 남긴 길고 긴 글이지만, 이 포스팅 덕분에 한 분이라도 더 온천여행의 매력을 느껴보도록 여행결심을 하실수 있기를 바랍니다.